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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설교 이야기

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 교부 주해 - 누가복음 8:26-37

<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 교부 주해 - 누가복음 8:26-37>

8, 26 - 37 :
거라사인들 지방의 마귀 들린 남자, 정확히 말하면 마귀 떼가 그리스도의 발치에 엎드려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께 청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주십시오' 이 말에 담긴 뻔뻔함과 오만 섞인 두려움을 눈여겨 보십시오. 겁이 나서 외치는 말인데도 오만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입니까? ... '예수님, 당신꼐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는 원수의 오만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아울러, 모든 것을 능가하시는 그리스도의 무쌍한 위엄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저항할 수 없는 힘과 짝을 찾아볼 수 없는 권위를 지니신 그분께서는 단지 뜻하시는 것만으로 사탄을 궤멸시키십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누가복음 주해')
악마들도 이 이름의 참된 본질을 알지 않았던가요? ... 이 마지못한 고백에 담긴 진실은 누구에게나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악마들은 그 이름의 능력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 능력이 그들을 제압하여, 그들은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던 몸을 떠납니다. 그리스도의 본질을 알고서 그분께 합당한 경의를 바칩니다. 한편,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당신께서 이루신 기적들과 당신의 이름으로 증명하십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삼위일체론')
그리스도께서 마귀에게 이름을 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군대입니다' 하고 대답하지요. 그에게 많은 마귀가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과연 그것을 모르셔서, 우리들처럼 뭔가 놓친 것을 알아내려고 물으셨을까요? 우리가 그렇다고 말하거나 그렇게 상상한다면 말이 안되겠지요.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보는 하나님이십니다(시7,10 참조). 그분께서 그렇게 물으신 것은 구원계획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마귀가 한 사람의 영혼을 점령하여, 가련하고 더러운 광기를 심어놓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뜻이었습니다. 성경이 알려주듯이, 마귀들은 악을 저지를만큼 영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선을 행할만큼 지혜롭지는 못했습니다(예4,22 참조). (알렉산드리아의 킬리루스 '누가복음 주해')
마태복음은 거라사인들의 지방에서 마귀들린 사람 둘과 예수님께서 마주쳤다고 기록합니다(마8,28 참조). 그런데 누가는 마귀들린 남자가 벌거벗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기 본성과 덕이라는 덮개가 없는 사람은 누구나 벌거숭이입니다. 복음사가들이 왜 마귀들린 사람 수를 다르게 기록하는지 그냥 넘어가지 말고 이유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마귀들린 자의 수는 다르지만 신비는 동일합니다. 마귀들린 사람은 악덕으로 뒤덮이고 벌거벗은 채로 오류에 노출되어 죄짓기 쉬운 다른 민족들의 표상입니다. (암브로시우스 '누가복음 해설')
예수님께 벌을 받은 '군대'는 이 세상을 상징합니다 주님께서는 마귀들에게 사람대신 돼지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눅11,15)'는 말을 들으셨던 그분께서 산 위에서 사탄과 그의 핵심세력인 군대(막5,13 참조)와 전쟁을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자 주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을 물에 빠져죽게 하십니다. 이로서 마귀들린 남자를 지켜주시던 자비로우신 분의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마귀들은 그분께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지옥으로 보내지 말아달라고 애걸했지요. (시리아인 에프렘 '타티아누스의 네 복음서 발췌 합본 주해')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마8,33)'라고 쓰여있습니다. 사람들이 파멸할 때는, 철학자도 회당의 지도자도 그들을 치유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만이 사람들의 죄를 없앨 수 있지만, 그들이 그분의 치유를 받아들인 경우에 한합니다. 그분은 내켜하지 않는 자들을 고쳐주고 싶어 하지않으시며, 거라사인들처럼, 당신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하는 나약한 자들은 금방 등지고 떠나십니다. 그들은 회당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자기네 마을에서 나와, 그분께 떠나주십사고 청했습니다. 그분을 몹시 무서워했던 것이지요. ...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왜 치유받은 사람을 받아주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셨을까요? 아마 그 일을 자랑거리로 삼지않으시려고, 그리고 집이라는 것이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에 지나지 않지만 믿지 않은 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시려고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 남자가 마음으로 치유를 받아들였기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무덤을 떠나 영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셨습니다. 마음의 무덤이 그 안에 자리잡고 있던 사람이 하나님이 성전이 되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 '누가복음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