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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설교 이야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눅 16:19-31) - 1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

  오늘은 성령강림 후 열 여섯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부자와 나사로 비유입니다. 오늘 비유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선 비유들과 14-18절의 예수님 말씀을 선 이해 하여야합니다.

  우선, 14절로 18절을 통해 이 비유의 주인공이 바리새인과 같은 이들임을 말씀하시며, 그들이 어떤 부분에서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십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재물과 부를 자신의 옳음을 규정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과 율법을 말하면서도 결국 하나님의 긍휼은 없이 물질로 사람을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또한, 이제는 글(율법)과 말(예언)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간의 일상으로 내려온 성육하신 삶을 통해 우리로 하나님 나라의 초청을 요구하십니다. 율법(글)과 예언(말)을 통해 표현된 하나님의 뜻은 주님의 성육하신 일상의 삶을 통해 온전히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이제 시작된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태도가 요청됩니다.

  그 한 예로 간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16:18). 당시 유대적 관념으로서 이혼은 남자에게만 일방적으로 허용된 선택권이었으나, 주님께서는 그러한 일방적인 힘과 계급적 행태를 모두 죄(간음)으로 규정하십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규정되었기에, 우리의 태도와 삶 역시 새롭게 요청됩니다. 바로 이 부자와 나사로 비유는 우리에게 ‘소유’의 문제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요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앞선 탕자 비유와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서 주인공은 첫째아들과 불의한 청지기였습니다. 이 두 비유의 대상은 가난한 이들과 죄인들을 무시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오늘 부자와 나사로 비유의 주인공은 부자로서, 앞선 비유들의 주인공과 묘한 비교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탕자 비유에서 첫째 아들은 둘째 아들이 돌아온 것에 관심이 없었듯, 오늘 비유에서 부자는 철저히 나사로를 무시합니다. 이런 무시하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부자를 사랑스럽게 대합니다(16:25). 탕자 비유에서도 탕자를 무시하던 첫째아들에 반응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사랑스럽게 첫째아들을 대합니다(15:31).

  하지만 청지기 비유에서 불의한 청지기가 자신을 위해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것과 달리, 부자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값비싼 옷을 입고 날마다 연회를 즐깁니다. 이런 자신을 위한 행동의 결과로 청지기의 주인은 그를 칭찬하지만, 부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그의 괴로움을 용서치 않습니다.

  이 비유를 듣거나 읽는 청자와 독자들은 이러한 유사점과 대조점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초청된 자신의 현재 일상을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여정 가운데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할지 주님은 묻고 계십니다.

  이 비유는 우리 삶의 부분을 어떻게 낭비하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와, 우리 삶의 자리를 돌아보는 것을 요청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라는 뜻인 나사로가 지금도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도우시는데, 우리는 어찌해야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