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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설교 이야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눅 16:19-31) - 2

  오늘은 누가복음 16장 19절로 31절을 본문으로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라는 제목의 설교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부자와 나사로 비유입니다. 이 본문은 15장부터 이어진 여러 비유들의 결론과도 같은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세 가지 정도의 주목할 점들이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오늘 본문에는 어떤 믿음의 모습, 신앙과 상관없이 사후의 결과가 이어집니다. 부자와 나사로는 자신에게 처한 삶을 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고통 속에,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깁니다. 하나님께로 받은 삶을 낭비했거나 희생당한 것이란 관점으로 볼 때,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규칙(율법)이나 종교적 응답(예배)을 넘어선 삶임을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로 오늘 비유는 종교와 사회가 규정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옳은 것인가? 의문을 던집니다. 당시 사회와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부자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물질적인 복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죠. 반대로 나사로는 장애를 가진, 하나님 앞에 죄인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결과는 정반대이지요. 부자는 그것을 깨닫고 나사로를 자신의 형제들에게 보내달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고민과 성찰없이 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죽은 자가 살아나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미 죽으시고 살아나신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나는 고민하며 성찰하고 있는지요?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는 비유 중 유일하게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보통의 글과 인식과는 반대되는 부류로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보잘 것없는 이는 무명이요,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이들의 이름을 넣는 것이 정상인데도 오늘 본문은 그 반대를 택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존재를 이야기합니다. 부자에게는 좋은 옷과 삶이 있었지만 그의 존재는 인정받지 못합니다. 반대로 이 보잘 것없는 거지는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자’로 존재합니다.


  과연 나사로는 하나님께서 도우신 걸까요? 오늘 본문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목에서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향해 주님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당신이 친히 오셨고, 그는 우리가 그를 따르길 바라십니다. 오늘 하루 나는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이들을 감히 외면할 수 있을까요?


1. 오늘 설교를 생각하면서, 믿음과 신앙은 어떤 모습이어야할지 이야기해봅시다.


2. 오늘 설교를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지 이야기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