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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설교 이야기

대림절 첫번째 주일, 교부 주해 - 마태복음 24:36-44

<대림절 첫번째 주일, 교부 주해 - 마태복음 24:36-44>

24, 36 :
그리스도께서 당신도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른다고 하심으로서 당신의 몸인 교회와 함께 하십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
그리스도께서는 종말의 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며, 천사들도 모르고 당신조차 모르신다고 가르치심으로서, 우리가 그 날짜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종말의 날을 불확정적으로 남아있도록 하신 것은, 우리에게 회개할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시는 한편 불확정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가 간절한 마음을 계속 지니게 하고, 그럼으로서 당신의 뜻을 알려 사람들이 구체적인 날짜를 예측하는 일이 없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중대한 날은 대홍수 때처럼 우리의 일상적인 삶 안에, 우리가 하는 행동들 안에 우리가 당하는 고통 안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마태복음 주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많은 사람들이 사치스럽게 살 때 예기치 않게 갑자기 당신께서 오시리라는 것을 알려주시려 함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마태복음 강해')

24,37-39 :
복음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종말의 때가 언제인지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저녁(젊은 시절)이든 한밤중(삶의 가장 암울한 시절)이든, 또는 수탉이 우는 때(완전히 성숙한 때)든, 아침(노년에 깊숙이 들어섰을 때)이든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또 다른 종류의 종말(오리게네스는 이전까지는 세상의 종말을 말하고, 여기 말하는 바는 개인의 종말-완성'텔로스'를 뜻한다), 곧 사도와 함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6,14)라고 말할 수 있는 의로운 사람들의 종말(완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에게는 세상의 종말이 이미 왔습니다. 그리고 세상 것들에 대해 죽은 사람에게 주님의 날은 이미 왔습니다. 더이상 죄나 세상을 위해 살지 않는 사람의 영혼에는 사람의 아들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

24,40-41 :
재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일어날 것입니다. 직업도 사회적 지위도 최후의 심판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마태복음 강해')
그리스도의 심판은 성도들과 죄인들이 완전히 나뉘는 것입니다. 선행을 낳는 믿음을 지난 한 무리는 데려가시고, 거룩한 음식은 결코 내지 못하는 맷돌만 헛되이 돌리는 다른 무리는 무익한 율법의 행실 안에 버려질 것입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마태복음 주해')

24,42-44 :
주님은 우리가 언제나 방심하지 않고 노력하길 바라십니다. 주님께서 각 사람의 삶의 끝을 그토록 불확실하게 만드신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마태복음 강해')
누구나 항상 도둑을 경계해야 하듯이, 삶의 종말과 그에 뒤이은 심판을 맞을 준비가 늘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는 날을 우리가 모르는 것은 그 분의 오심을 열렬히 기다리는 우리로 하여금 경계하도록 만듭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마태복음 주해')
부주의한 영혼은 이미 죄 속에 깊이 쓸려 들어가고서야 자신이 죄 속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도둑(악마)의 활동은 은밀하게 시작되는 까닭에 영혼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은 깨어있으면서, 도둑이 드나들 수 있는 입구를 모두 닫아야 합니다. 입은 부지런히 거룩한 말을 입에 올림으로서, 귀는 경건한 소리를 담음으로서, 눈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봄으로서, 마음은 거룩한 생각을 함으로서 그렇게 해야합니다. 우리는 재림의 때는 물론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므로, 모든 세대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지금이라도 돌아오실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합니다. ('마태복음 미완성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