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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설교 이야기

부활 주일 교부 주해 - 요한복음 20:1-18

<부활 주일 교부 주해 - 요한복음 20:1-18>

 20:1-18 :
주간 첫날은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주일이라고 부르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그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요한복음 강해')
인간을 위해 태어나신 그분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들과 함께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헤시키우스 '거룩한 부활절에 관한 첫째 강해')
복음사가들은 무덤에 온 사람들과 그들이 온 순서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르게 기록하지만, 그들이 주님께서 이미 부활하신 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든 복음서가 일치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 '단편집')
'이른 아침'과 '밤 늦게'는 같은 때, 곧 한밤 중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가리키는 시각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는 밤의 끝을, 다른 하나는 시작을 날의 시작으로 친 것이어서, 둘 다 밤의 한가운데, 방금 제가 말했듯이 한밤중이라는 같은 시각을 가리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요한복음 주해')
막달라 마리나는 만물의 창조주를 무덤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분이 육체적으로 죽어 무덤에 묻힌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시신이 그곳에 없자, 그녀는 누가 그분을 훔쳐갔다고 생각합니다. 무덤에 왔을때, 마리아는 실로 아직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
일부 그리스어 성경사본에는 '그들이 저의 주님을 꺼내갔습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냥 시중드는 관계에 있는 정도가 아니라 남다른 사랑을 지닌 사람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본에는 이렇게 표현된 것이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요한복음 강해')
그녀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그분을 전보다 못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분께서 돌아가셨는데도 예전처럼 그분을 주님이라고 부름으로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요한복음 주해')
그들은 아마포가 놓여있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부활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들이 시신을 옮길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아마포로 시신을 감싸지도 않았을 것이며, 누가 시신을 훔쳐갔다면 수건을 걷어서 개킨 다음 아마포와 따로 두는 성가신 일을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시신 채로 가져갔겠지요.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요한복음 강해')
아마포가 무덤 안에 놓여있었다는 사실은 마리아의 생각처럼 누가 시신을 꺼내간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로 생각됩니다. 시신을 훔쳐가는 사람이 아마포를 남겨두었을리도 없고, 아마포를 다 풀때까지 그고세 남아있다가 잡힐 도둑도 없을테기 때문입니다.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 '마리누스의 질문에 관한 짧은 추보')
그녀는 제자들이 무덤을 떠난 뒤에도 그곳을 뜨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발견하지 못한 그분을 사방으로 찾았습니다. ...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사랑의 힘은 더욱 열심히 찾으려는 노력을 하게 만듭니다. 마리아는 처음에 그분을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발견한 것입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
그곳에 나타난 천사들은 부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주제가 불거져 나옵니다. 그들은 먼저 마리앙게 다정히 말을 건넵니다. 유달리 환한 자신들 모습에 마리아가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하고 묻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요한복음 강해')그리스도를 위해 흘린 눈물은 언제나 보상받으며 그분에 대한 사랑은 머지않아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잘 보십시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요한복음 주해')
우리에게 사랑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성경의 이런 언명들은 구원자의 모습을 다시보게 되리라는 약속으로 우리 눈물을 닦아줍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
그들이 알아보지 못한 잘못이 주님의 육체 탓이 아니라 그들의 눈에 닫혀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도록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눅24,31)'.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찾고있는 동안에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한 것이 바로 이런 까닭입니다. 그 뒤 마리아는 그분을 알아보았고, 그때는 그분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히에로니무스 '예루살렘의 요한 반박')
예수님께서는 처음에는 마리아를 일반적인 호칭을 써서 '여인아'라고 부르시고, 그 다음엔 '마리아야'하고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너를 알아보는 이를 알아보아라'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 마리아는 이름을 불리자 자신의 창조주를 알아보고 곧바로 그분을 '랍비' 곧, '스승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마리아가 외적으로 찾는 분인 동시에 마리아가 당신을 찾도록 내적으로 가르치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
첫날에 하나님의 낙원에 있게 되는 것(눅23,43 참조)도 부활에 속하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들지 마라'고 말씀하신 때도 부활에 속하지만, 부활이 완성된 것은 그분께서 아버지께 가셨을때입니다. (오리게네스 '요한복음 주해')
그리슫께서 성육하신 목적은 우리가 하늘로 갈 수 있는 길을 여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뭐라고 하시는지 잘 들으십시오.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나님이시며 너희의 하나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암브로시우스 '신앙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