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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설교 이야기

성령강림 후 스물 한 번째 주일 교부 주해 - 마태복음 22:34-46

<성령강림 후 스물 한 번째 주일 교부 주해 - 마태복음 22:34-46>

22, 34 - 40 :
그들은 주님께 도움을 받고자 온 것이 아니라 시기심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음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관심사에 매달림으로서 헌신하는 마음을 나누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가르침을 통해 당신의 계명은 모든 계명을 요약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율법 교사는 예수님을 하나님을 자처하는 사람으로 몰아 궁지에 빠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예상대로는 대응하지 않으셨지만, 마가가 이야기하듯, 율법교사는 결국 예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막12,32-33).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마태복음 단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마음과 지식의 등불로 환하디환한 빛을 받는 영혼과 하나님 말씀으로 가득찬 정신을 지니고서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즐거워하는 사람, 자신이 받은 모든 은사에서 확인된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실로 이런 모든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서와 예언서 모두가 하나님께 관한 지식과 지혜의 일부임을 알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서와 예언서는 모두 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원칙 위에 서 있으면 그것을 고수하록 있다는 것과 믿음의 완성은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것입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
따라서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관련한 모든 것을 가르쳐줍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선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계명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는 의로운 행위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 계명은 둘째 계명을 수행하는 길을 준비해주며 한편으로는 둘째 계명에 의해 확립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 안에 굳건히 서 있는 사람은 분명 모든 일에서 이웃을 사랑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계명을 완수하는 사람은 모든 계명을 실천하는 셈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마태복음 단편')
주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가장 큰 계명일 뿐 아니라 첫째 계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첫째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나온 순서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덕의 순서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계명은 모든 것의 바탕이므로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많은 계명이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이것이 가장 큰 계명이자 첫째 계명이라고 하시며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해야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둘째도 첫째와 '같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한다'고 하신 이 비유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둘째 계명을 우리는 이런 식으로 이해해야합니다 : 우리는 이것을 계명들에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를 매기시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지혜로 받아들이며, 율법의 계명들을 꼽을 때 중요성과 순서 면에서 어떤 것은 셋째가, 또 어떤 것은 넷째가 된다고 이해해야합니다. 이 일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셔야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힘이시며 하나님의 지혜'(고전1,24)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
22, 41 - 46 :
군중이 혼란스러워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 곧 구원 경륜은 만물을 적절한 시기에 순차적으로 완성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 반항하는 이들을 신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을 가르치기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미완성 작품')
이제 주님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뒤집어엎으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다윗의 이야기를 꺼내시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실체와 신성을 더욱 분명히 알아보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분이 단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당신께서 주님이심을, 그리고 당신께서 아드님이시며 아버지와 똑같은 영광을 지닌 분이시라는 예언자의 언명(시110,1)을 인용하십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마태복음 강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께 배우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그분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많은 것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아는 사람들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처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질문하신 이유입니다. 곧,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문제를 논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적수들의 모든 물음에 답하셨지만, 질문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율법 전문가들과 식사하는 관습에 따라서 참되고 거룩한 가르침을 보여주고 또 건네주시는 것은 참으로 적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께서 모든 예언자 가운데에서 최고의 예언자시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은 인간 그리스도를 시험했습니다. 그들이 그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믿었다면, 그들은 그분을 시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보여주기로 하셨습니다. ... 그래서 주님은 당신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대신 당신의 물음이 그들에게 당신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도록 이런 교묘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 그분은 육에 따라서는 다윗의 자손이시고 신성에 따라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미완성 작품')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다윗의 자손임을 부인하신 것으로 이해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서 해석해야합니다. ... 그분은 영원히 다윗의 주님이시며, 시간 속에서는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본질에서 나신 다윗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나신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를 마음에 새깁시다. 하나는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될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 우리가 처한 유형에서 구원되는 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그러나 그들이 감히 더 이상 그분께 묻지 못한 이유는 자기들이 받은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배우려는 마음에서 주님께 묻고자 했다면, 그런 질문을 결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합니다. 그들은 오직 그분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마음으로 물었고, 그랬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단도직입적인 대응에 움츠러들어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못하도록, 그들이 한 말을 가지고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려 하셨습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