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목자/설교 이야기

성령강림 후 스물네 번째 주일 교부 주해 - 마태복음 25:14-30

<성령강림 후 스물네 번째 주일 교부 주해 - 마태복음 25:14-30>

25, 14 - 30 :
그래서 이 사람은 '여행을 떠나는 어떤 사람'처럼 '자기 종들을 불러' 순수한 말로 자신의 돈을 '맡겼습니다'. 실로, 그 분의 '말씀'은 '순수한 말씀, 흙도가니 속에서 일곱번이나 정제된 순은(시12,7)' 같은 말씀입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란 당신께서 취하신 육신에서 하늘로 떠나신 우리 구원자가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땅은 그분의 육신에 어울리는 장소입니다. 그분께서 하늘에 그것을 세우실때, 말하자면 그것은 먼 곳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
집주인은 실상 만물의 주님이신 창조주이십니다. 말씀께서는 이 비유에서 주인이 집을 떠나있는 시간을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일에, 또는 그것이 아니면 적어도 신성의 보이지 않는 내밀한 특성에 비유하십니다. ... 게으름을 피운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에 적격이었음을 알려줍니다. 두려움과 게으름에 묶여있는 사람은 끝내는 가장 질 나쁜 악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었다고 에수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선물을 숨김으로서 자신에게는 쓸모없는 것으로 다른 이들에게는 유익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마태복음 단편')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이 자기 종들에게 재산을 맡깁니다. 이는 그를 믿는 이들에게 영적 선물을 준 것입니다. 그는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육신의 감각에는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이렇게 다섯가지가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는 오감의 선물 곧, 외부의 것들에 대한 지식을 나타냅니다. 두 달란트는 이론과 실천을 나타냅니다. 한 달란트는 이론만을 나타냅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
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액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란트를 받은 이'도 결코 적은 액수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주인에게서 받은 것은 한 달란트라도 엄청나게 큰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종은 셋입니다. 다른 비유에서도 '어떤' 사람들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열매를 내는 사람들의 수가 셋입니다. 거기서도 '어떤 사람은 백배, 어떤 사람은 예순배, 어떤 사람은 서른배(마13,23)'를 냅니다. 그러나 서른배를 내는 사람은 구원받습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물러가서 주인의 돈을 땅에 숨겼습니다. 달란트를 땅에 숨긴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세속적인 생각에서 들어올리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영적인 이익을 구하는데가 아니라 세상일에 쓴다는 뜻입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
종들이 잘잘못을 판단받고 보상을 받기위해 주인에게 간 것이 아니라는 점도 눈여겨보십시오. 때가 되자 '주인이 그들에게 갔습니다'. 주인은 '오랜 뒤에' 와서, 그들이 선행으로 얻은 것들에 대해 상을 주고 그들이 죄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벌을 주고자, 그들이 한 모든 일에 대해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인은 각 사람이 한 모든 일을 꼼꼼히 조사함으로서 '셈'을 했습니다. 죄를 지음으로서 악을 행하고 선을 행함으로서 이윤을 거둔 이들을 보고, 우리는 우리 마음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주인께서 우리와 셈을 하러 오셨을때, 헛된 말을 떠벌린 잘못 같은 것일지라도 악행을 저지른 이로 판단받지 않아야할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
그분께 결산보고를 하러 오는 사람은 자신이 이룬 것과 주인에게서 받은 것을 모두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한 사람은 '주인님, 저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는데'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두 달란트를' 맡기셨다고 함으로서, 자신들이 소득을 얻게 된 원천을 그분께 받았으며 그래서 그분께 매우 감사하며 모든 것이 그분 덕이라고 생각함을 밝힙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마태복음 강해')
그는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는 남에게 그 이상은 가르치지 못합니다. ... 그런 까닭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자기가 가진 다섯 달란트보다 더 많이 벌지는 못했고,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자기가 가진 두 달란트보다 더 많이 벌지는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
현세를 살면서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한 것 같아도, 우리가 받을 영원한 상과 비교하면 그것은 아주 적습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
이들보다 못한 능력을 보인 또 다른 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주인은 능력이 모자라는 종에게 하듯 그에게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그것을 받은 종은 물러가서 '달란트를 땅에 숨겨두었습니다'. 그는 차라리 그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 했습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
그러나 셋째 종은 자신의 달란트를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볼 마음이 없었습니다. ... 쓸모없는 종은 자신의 주인을 '모진 분'이라고 하면서도, 주인을 위해 이익을 내기를 게을리 했습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
종은 자기가 한 말 때문에 오히려 더욱 난처해졌습니다. 주인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데에서 모은다. 나는 네게서 내가 주지 않은 것을 받기를 기대한다. 나는 내가 너에게 활용하라고 준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기대한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돈을 돌려받기까지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너는 그 돈을 가지고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마태복음 강해')
설교나 가르침의 은사가 주어진 것은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서 이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사를 부지런히 사용하는 사람은, 은사를 받아 게으르게 사용하는 사람이 자기가 받을 것을 잃게 되는 만큼, 그 은사를 더욱 풍성히 받을 것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마태복음 강해')
'한 달란트를 받은 이'는 비록 믿음을 대담하게 실천한 사람들에 속하지는 못할지라도 신자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아마도 이들의 행동은 다른 면들에서는 흠잡을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받은 것을 조심스럽게 지키지만, 거기에 무엇을 더하지도 않고 그것을 운용하거나 열심히 관리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말씀은 그들 안에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거기에서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로 보이기조차 합니다. 이런 이들은 하나님을 모질고 엄격하고 무자비하신 분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리게네스 '마태복음 주해')
사랑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다른 선물들도 받습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그가 받은 것처럼 보이는 선물들마저 빼앗깁니다. 그러니 친구 여러분,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서 사랑을 지키는데 깨어있으십시오. 참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의 친구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여러분의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사람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을 빼앗깁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복음서 강해')